중국현대추리소설론

김택규 선생이 옮긴 중국추리소설의 근황


<중국 현대 추리소설론>

 


왕정(汪政) 글/ 김택규(金宅圭) 번역

 


최근 중국 상하이의『문회보文匯報』는 ‘문화뉴스면’에「지식인들에게 탐정소설을 팔다」라는 기사를 싣고 왕안이王安憶, 주티엔신朱天心, 왕쟈웨이王家衛, 이중티엔易中天 등 여러 문화계 인사들의 탐정소설 독서와 평가를 소개했다. 왕안이 부분에서 기자는 이렇게 썼다. “상하이의 여작가 왕안이는 최근 자기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열광팬이이며 곧 출간할 자신의 첫 평론집 이름이『화려한 가족 - 아가사 크리스티의 세계』라고 대범하게 밝혔다.” ‘대범하게’라는 단어를 쓴 것이 꽤 재미있다. 이 기자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쓴 것일까?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이것은 탐정소설을 비롯한 추리소설이 중국 정통문학 및 정통 독서계, 그리고 주류 미학관에서 부자연스러운 위치에 처해 있음을 시사한다. 어떤 사람은 추리소설을 좋아해도 그것을 인정하기를 꺼린다. 특히 품위 있는 문화인, 엘리트 지식인이 그렇다. 왜냐하면 추리소설은 로맨스, 무협, 미스테리 등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통속적이며 격조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면 당신의 사회문화 수준이 어떠하든 당신은 본질적으로 취미에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찍힌다. 난징의 처우더우부(臭豆腐: 두부에 양념을 발라 발효를 심하게 하여 강한 냄새가 나는 간식)가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통 대접을 못 받는 것과도 같다. 양복에 구두를 빼 입은 사람이 자기가 처우더우부를 말도 못하게 좋아한다고 하면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그래서 첸중수錢鐘書(현대 중국의 유명 소설가 겸 학술연구자)는 탐정소설이 소년 시절의 독서 취미라고 했다. 또 리쩌허우李澤厚(현대 중국의 유명 철학자, 미학자)는 추리소설이 두뇌능력 증진에 보탬이 되고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논리력을 훈련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옛날 마르크스가 고등수학 문제를 푼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왕안이는 용감한 사람이다. ‘대범하게’ 자신의 불량한 버릇을 인정했으니까. 아울러 우리는 그녀가 그 버릇을 학술화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추리소설을 본다고 해서 신분에 구애받고 포장을 할 필요가 없다. 전통적으로 추리소설은 의식적으로 자신과 정통문학을 갈랐으며 일반 대중을 상대로 인간성의 나쁜 측면을 드러내고 비일상적인 복잡한 이야기를 전개해 왔다. 또한 자체적인 서사모델을 형성하는 한편, 인간 마음 속의 호기심, 모험, 엿보기, 투쟁심 등 대체적이며 보상적인 심리적 내용을 자극했다. 그리고 작가는 점점 더 자신의 신분을 자리매김하고 최대한의 독자 확보, 최대한도의 차별화된 특징과 장르적 성격, 다른 베스트셀러 작가에 필적하는 시장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에서 이러한 자리매김은 기나긴 과정이었으며 이 모든 것은 현재 중국에서 초보적으로나마 규모를 갖췄다. 굳이 왕안이 같은 엘리트 지식인이 거들지 않아도  추리소설은 이미 충분한 호소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나날이 성숙해지고 있으며 작가, 도서, 출판사에서부터 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추리소설을 많은 문학과 이데올로기의 혼돈에서 이끌어내 하나의 명확한 문화상품이 되게 하였다. 이것은 서구와 일본 등에서는 그리 신선한 일이 아니지만 중국처럼 특수한 현대사의 배경을 지닌 국가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국면이 형성된 것은 미시적 원인을 포함하여 모두 네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국가이데올로기의 합리화 추세로서 문학예술이 더 이상 정치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 제4차 대표대회에서의 덩샤오핑의 강연을 시점으로 문학의 다양성이 인정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현재까지 모두가 문화는 민중의 부단히 증가하는 다양화된 정신적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독자에게도 여유로운 환경을 창조해주었으니 그전 문화대혁명 시기에 추리소설류는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류의 금서에 속해 떳떳하게 읽히지 못했다. 다음 두 번째 원인은 소비사회의 기본적인 형성이다. 현대사회의 소비적 성격은 사람들의 물질적 소비욕을 자극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정신문화의 소비욕도 자극한다. 중국에서 대중문화가 일어남에 따라 고급문화가 지배하는 전통적 상황과 가치관이 점차 와해되면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정치나 공리와 무관한 향락적 소비 충동이 풀려나와 일상생활의 조절 및 완충 기능을 하고 있다. 이것이 추리소설에 넓은 시장과 많은 소비자를 가져다주었다. 다음, 세 번째 원인은 문화산업의 발전이다. 국가 문화체제의 개혁, 출판업의 제도개편, 출판경영의 개방과 다양화는 중국 출판인들의 마케팅의식을 강화시키고 도서의 문화상품적 성격에 대한 인식을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독자의 소비 변화에 대한 그들의 감각을 더 예민하게 하고 도서의 기획과 창의적인 개발도 더 자각적으로 하게끔 만들었다. 물론 출판계의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다. 중국의 출판체제는 대단히 복잡해서 중국의 문화제도를 모르는 사람은 아예 이해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출판인들의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고 독립권도 커지고 있어 이 점 때문에 추리소설 같은 소비적 도서에 대한 출판인들의 흥미도 고조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벌써 중국의 여러 출판사들이 추리물 브랜드를 개척하고 있는데 반면 아직 주저하는 출판사들도 있다. 그러나 추리소설이 아직 대중이 아니라 ‘소중小衆’의 독서물이긴 해도 이 소중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게다가 소중이라는 게 얼마 만한 숫자를 말하는지도 상대적이다. 중국의 독서 인구로 볼 때 ‘소小’의 절대적인 숫자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다빈치코드』는 이 소중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었으며 베스트셀러 특유의 허수를 감안하더라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집단의 소비는 나름의 개성이 있으며 추리소설팬들은 한 작가, 한 작품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런 독자들은 독서하고 책을 소장하며 서로 토론과 연구까지 한다. 그래서 이 소비집단은 비록 현재 크지는 않지만 상대적이며 자기 번식력이 강한 잠재주로서 어떤 출판인도 무시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원인은 추리소설의 파생 문화상품이다. 인터넷 컨텐츠, 영상물인 그것들은 추리소설에 대한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현재 인터넷 운영자들도 이 영역을 매우 중시하여 이미 많은 추리소설 사이트가 개설되어 있다. 그곳에 게재된 일부 작품들은 책의 형태로 전환, 출간되어 종이텍스트에 익숙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인기리에 방영된《적인걸전기狄仁杰傳奇》,《대송제형관大宋提刑官》,《암산暗算》,《꽃신 한 짝》과, ‘반스파이反特務’(국민당 스파이의 색출 과정을 다룸)와 법을 소재로 하는 많은 TV연속극들이 추리소설 시장에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에는 원래 자체적인 추리소설의 전통이 있다. 서구의 추리소설이 번역, 소개되기 전, 우리에게는 이른바 ‘공안문학公案文學’이라는,『포공안包公案』,『적공안狄公案』,『팽공안彭公案』(각기 송나라의 포청천, 당나라의 적인걸, 청나라의 팽붕이 명판관으로 난해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들)같은 옛날 고문과 구어문으로 씌어진 유사 추리소설이 있었다. 청나라 말기, 서구의 추리소설이 중국에 번역, 소개되어 중국 추리소설의 발흥과 변화를 이끌고 청샤오칭程小靑, 쑨랴오훙孫了紅, 루탄안陸澹安 등 본토의 유명 추리작가들을 탄생시켰다. 청샤오칭의『곽상탐안霍桑探案』은 아직까지도 고전탐정소설팬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리고 신중국 탄생 후 문화대혁명 종결 전까지는 위에서 말한 대로 주류 이데올로기의 탄압 때문에 추리소설 창작과 유통이 거의 중지되어 그것의 변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일부는 ‘반특무’, 경찰소설의 주제로 전개되었고, 다른 일부는 지하로 숨어들어 불법출판과 필사본으로 전개되었다. 전자의 많은 작품들, 예를 들어『쌍령마제표雙鈴馬蹄表』,『방울 없는 대상無鈴的馬幇』,『심야의 손님深夜來客』등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중 여러 작품들은 영화로 만들어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이 작품들의 패턴은 대체로 중국 형사들이 국민당 스파이가 중요한 시점(국경일 같은)에 중요한 지점(광장, 철도, 공장 같은)에 서 테러를 벌이려 한다는 첩보를 접하고 수사 끝에 그들을 일망타진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들은 플롯이 단일하고 구조가 단순하며 스토리가 대동소이한 동시에 인물이 유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 힘든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를 주었다. 20세기 80년대 이후, 문화적 금기가 점차 해소되기 시작했다. 우선 ‘셜록 홈즈’ 같은 탐정, 추리 작품들이 복간되어 큰 인기를 끌고 이어서 서구와 일본의 몇몇 유명 추리작가들의 명작이 번역, 소개되어 중국내 추리소설 독서와 외국 추리소설 창작이 근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 추리소설 창작도 다시 싹을 틔워 법정소설을 과도기로 하여 점차 정통 추리소설로 회귀했고 전통적 색깔을 탈피해 현대 추리소설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예를 들어 미스테리와 추리가 결합되어, 더 이상 마지막 진상을 중시하지도, 논리적 사유에 따라 엄격한 구성을 지키지도, 필연과 인과 등의 요소를 중시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심리적 환상, SF, 괴기 등의 요소를 도입해 과정과 분위기, 초현실에 역점을 두어 독자에게 더 많은 상상력의 공간과 정신적 사유를 전달한다. 예컨대 바오화保華, 란마藍瑪, 예융례葉永烈, 중위안鐘源 및 최근의 차이쥔蔡駿, 구이구뉘鬼谷女, 거수이哥舒意 등이 모두 이런 연쇄선상에서 주목할 만하며 많은 독자군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들이다. 그리고『형사대장』,『저물녘에 노크를 한 여인』,『매처럼 잔인한 그림자』,『안개비 속의 비둘기』,『사복경찰』,『착란인생』,『여배우가 실종된 밤』,『보라색 유혹』,『붉은 장원』,『바이러스』『황량한 마을의 아파트』,『부숴진 얼굴』등이 유명한 작품이다.

추리소설 평론가들은 논의의 편의를 위해 추리소설을 사회파, 심리파 등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나 역시 중국 현대문학의 현실에서 출발해 추리소설을 분류하고 있는데 첫 번째 부류는 본격파이다. 작가가 비교적 자신을 자리매김하고 통상적 추리소설 영역(출판, 유통 등)에서 비교적 순수한 각종 스타일의 추리소설을 쓰는 경우를 뜻한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것들은 대체로 이 부류에 속한다. 다음 두 번째 부류는 순문학 영역에서 추리소설의 서사형식을 빌어 소술예술의 본질과 사회, 인간성 탐구에 주 목적을 두는 경우로서 예술파라고 칭한다. 이런 글쓰기를 외국에서는 어떻게 보며, 과연 추리소설의 범위에 집어넣고 있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 중국은 순문학의 대국으로서 어떠한 관념과 문학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통문학의 관념과 대중문학/엘리트문학의 차별화가 뿌리깊어서 객관적으로 본격파 추리문학에까지 부단히 그 관념과 방법이 주입되고 있다. 아무튼 두 번째 부류의 작가로는 마위안馬原, 왕숴王朔, 위화余華, 거페이格非, 하이옌海巖, 판쥔潘軍, 팡팡方方, 베이춘北村, 천란陳染 및 최근 몇 년 문단에 부각된 마이자麥家, 톈얼田耳, 쉬이과須一瓜 등이 있다.

먼저 첫 번째 부류에 대해 논해보자. 이른바 본격파는 엄격한 논리를 따르는 추리물만이 아니고 작품 내용이 명확히 탐정, 추리, 미스테리 유형이기만 하면 전형적이든 모던하든 모두 이 부류에 속한다. 최근 몇 년간 여전히 전형적인 추리물 스타일로 발전해온 작가는 란마이다. 란마는 순문학 창작의 경험이 있고 90년대 중후반 추리소설 창작을 시작해 독서계와 출판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천당은 결코 멀지 않다』,『녹색거미』,『어둠을 응시하라』와 시리즈물『여배우가 실종된 밤』,『주식을 주무르는 매화노인 K』,『신비한 녹색카드』,『지옥의 노크소리』등이 있다. 독자들이 란마를 좋아하는 건 우선 그의 작품이 빚어낸 탐정 쌍추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 때문이다. 쌍추는 란마의 추리세계 속에서 하나의 기호가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때로는 잘못도 범하고 남을 욕하고 원망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이런 점이 독자로 하여금 그를 가깝게 만들고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그다음, 란마는 자신의 방법으로 전형적인 작품 속에서 추리 분석의 매력을 재현한다. 현대 추리물 창작에서 란마는 ‘지혜’에 미련을 가진 많지 않은 작가 중 하나이다. 기술이나 도구, 기이함에 기대기보다는 지혜에 기대를 건다. 이것은 작가의 일종의 선택이며 세계관이기도 하다. 즉 작가는 이 세계에 대해 분명한 관점이 있고 인간에 대해 충분한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란마는 가능한 한 삶에 녹아들어 자기 작품이 삶에 밀착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사회파의 흔적이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결코 중대한 사회적 주제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가 신경쓰는 것은 독자들이 자기 주변의 삶을 보게 하는 것이며, 일종의 현세와 세속의 분위기이다. 란마의 이런 글쓰기와 달리 더 많은 작가들은 지금 탐정보다는 주로 미스테리에 정력을 기울여 새로운 류의 추리소설, 즉 미스테리나 추리미스테리소설 창작을 열어가고 있다. 물론 미스테리소설이 무엇인지, 혹은 미스테리소설이 또 어떤 유형과 결합해 새로운 유형의 장르를 낳는지에 대해 평단과 출판계, 독서계에서 일치된 견해는 없다. 때로는 너무 많은 견해가 난무해 오히려 이 분야의 글쓰기를 ‘미스테리하게’ 보이게끔 한다. 하지만 관건은 현재 추리소설에 닥친 변화이다. 예를 들어 탐정이 추리하는 과정과 요소가 여전히 있더라도 탐정의 추리는 이미 작품의 주요 내용과 틀이 아니다. ‘탐정’은 작품에서 꼭 직업적 캐릭터가 아니라 어떤 인물도 그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작품들 중에 많은 내용이 앞다퉈 분화하고 또 많은 작가들이 그 분화 가운데 다양한 선택과 방향을 취하고 있다. 에컨대 차이쥔이 내건 기치는 바로 ‘심리미스테리소설’이다. 젊고 재기 넘치는 이 작가의 작품은 똑같이 전형적 추리소설의 핵심을 취하고 있지만 나타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그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조성과 기이한 스토리의 설정, 인물 묘사, 시적이며 화려한 색채를 띤 감상적 분위기의 언어로 작품에 강한 흡인력을 불어넣는다. 그의 이른바 심리미스테리는 바로 인간성과 인간의 심리, 욕망에 대한 발굴이지 결코 심리분석식 표현이 아니다. 미스테리는 그 외관이며 심리는 그 내적인 원동력이자 미스테리의 최종 목적이다. 그는『저주』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두 권의 책은 다 무덤을 다뤘다. 사실 무덤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정말 무덤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마음 속에 무덤이 존재한다. 애석하게도 우리 대다수의 마음 속에는 어떤 무덤이 존재한다. 나는 프로이트를 우리의 해석의 전거로 사용할 필요를 못 느낀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사람들에게 미스테리 외에 우리 자신의 반성과 사유를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이 술회는 차이쥔의 미스테리 개념을 밝혀준다. 이번 난징의 토론회에 차이쥔 선생이 오신 관계로 깊이 있는 교류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그의 많은 인터뷰 자료를 읽어본 바 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확고한 의식이 있으며 독자를 존중하는 작가이다.

다른 부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대략 20세기 80년대 중엽에 서구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함께 중국에 도입되어 모더니즘 문학운동을 촉진시켰다. 그 실적 중 하나는 바로 순문학의 아방가르드소설 창작이다. 모더니즘,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창작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선을 타파하고 후자의 일부 창작유형, 표현방법, 스타일을 순문학에 끌어들이는 한편, 패러디와 전복적 방법을 통해 새로운 문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추리물은 중국의 많은 청년 작가들이 애호하는 서사양식이 되었다. 마위안이 가장 먼저 이 분야의 실험을 시작한 인물이다. 라싸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은 폭력, 죽음, 신비로운 사건이 가득하며 작품 안에서 독자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서술도 복잡하고 모호하여 독자들에게 마치 미궁에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마위안의 이런 스타일은 분명 토마스 핀치,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솔 벨로와 프랑스 누보로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들 역시 추리물에 정통했다. 한편 마위안과 달리 왕숴는 다른 측면에서 추리물의 서사모델을 채택했다. 그는 전통 추리소설 속의 정의, 지혜, 제도와 질서를 해소시키는 대신, 세속적이며 경멸적인 태도로 숭고하고 정통적인 모든 사물을 조롱했다. 그의『무정한 비오는 밤』,『나는 ‘늑대’다』등은 모두 탐정추리물 ‘밖’의 작품이다. ‘밖’이라는 건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이 소설 속 경찰이 관심을 갖는 것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일부 청년들의 심리, 특히 아문화(亞文化: subculture)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왕숴는 사회의 주변인들, 사회의 비정상적 심리에 일찍 주목한 작가이다. 사람들이 문화대혁명을 성찰하고 개혁개방에 환호할 때, 그는 퇴폐와 말세, 불공정 등의 삶의 위기감을 글로 호소했다. 왕숴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탐정추리물의 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초기에 진지하게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면 나중에는 점점 탐정추리물의 색깔이 희박해졌다. 또한 위화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 그는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특별한 의의를 갖는 작가이다. 80년대 이후의 몇 가지 글쓰기의 흐름이 그와 관련이 있다. 그는 아방가르드소설을 쓸 때, 몇 편의 추리물과 미스테리물을 쓴 바 있다.「강변의 착오」는 당시 아방가르드소설의 대표작이면서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 텍스트이다. 소설이 서술하는 것은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이지만 이 과정은 그 자체로 구성과 해체를 거듭하여 결국 해석이 불가능해지는 서술이며 마지막에는 사건 자체가 문제가 돼버린다. 내가 이런 류의 작품들을 ‘예술파’라 하는 것은 이 작가들이 추리와 미스테리를 서사의 요소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형식적인 의미는 그것들의 기능적인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들은 그것들 자체 이외의 목적에 봉사한다. 마위안과 위화에게 있어서 서사의, 경험에 대한 해체, 객관적 실증에 대한 파괴는 바로 객관세계에 대한 언어의 재구축이며 필연과 인과에 대한 질문이다. 탐정, 추리, 미스테리는 본래 해결이 있게 마련인데, 해결이 되고 나면 사람들은 그것들의 형식과 과정의 의미를 잊는다. 그런데 해결이 안 되면 사람들은 그 형식과 과정을 성찰하며 그런 성찰이 낯설게 하기로 인한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여기에서 나는 최근 1, 2년 사이 내가 주목해온 청년 작가, 톈얼을 추천한다. 이 사람은 서사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가진 작가로서 형식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동시에 전대 작가들과 달리 경험을 방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대단히 노련하고 침착하며 진중한 지혜가 있다. 그의 추리작품은 또 전복적 의미가 있어 그것을 새로이 일상생활에 이식한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캐릭터(탐정, 범죄자 등)가 아니라 인간, 개체로서의 인간이며 그가 캐묻는 건 끝없는 현실 속에서 개체로서의 인간의 운명이 어떠한가이다. 티엔얼은 최근작「겹쳐진 영상」에 대해 논하면서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 나는 이것이 젊은 순문학 작가들의 추리 유형 소설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고 생각한다.

 


이 중편은 사건 해결류의 소설에 대한 지금까지의 나의 회의를 표현하였다. 수사의 명수는 당연히 신에 가까운 소질을 가져야 하고, 사욕이 없어야 하며, 자기 목숨처럼 사건 해결을 좋아하고, 선천적으로 미세한 단서를 포착하는 데 능해야 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마지막에 실망을 피하기 어렵다. 앞에서는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데 내막을 밝히고나면 대단할 게 없다. 범인이 가장 의외의 인물이더라도 어쨌든 A, B, C, D 등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일 수밖에 없다. 살아오면서 나는 몇몇 형사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은 어김없이 십중팔구는 일상적인 작은 일들에 파묻혀 있었다. 사건을 접하면 어쨌든 몇 건은 해결하지만 나는 그 해결 과정에 오류가 가득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한두 사건을 해결하면 그들은 명수로 인정받고 또 한두 사건을 해결하면 잘 못하더라도 전문가 대접을 받는다. 이것은 번잡한 삶 속에서 한가지 사업을 완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당신이 때때로 의외의 일들을 만난다는 걸 말해준다.

「겹쳐진 영상」에서 나는 사건을 파편화하여 경찰 얼천의 일상생활 속에 쑤셔넣었다. 사건의 시작은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며, 사건이 끝났는데도 이야기는 그 자체의 궤도를 따라 미끄러져 간다. 이것은 내가 절실히 느낀 삶의 진실이며 그래서 나는 얼천으로 하여금 변변치 못한 사건을 처리하고도 승진의 기회를 얻게 만들었다.

.......

나는 거친 언어로써 삶에서 얻은 황당무계한 의미를 표현하고자 스스로 어떤 방향을, 즉 구상具象 위에 황당함을 세우는 방향을 정해 세부사항 속에 실현했다.「겹쳐진 영상」은 바로 이 점을 충실히 준수해 씌어졌다.

 


나는 앞에서 중국이 순문학의 대국이라 말했다. 중국에서는 어떠한 문학적 문제를 논해도 이런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을 배경으로 추리나 미스테리의 변화를 살펴보면 순문학 작가들이 장르소설의 글쓰기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전형적인 예가 마이자이다. 마이자의 출현은 일찍이 중국 문학계에 일시적인 충격을 불러왔다. 그를 어떤 부류로도 귀납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그는 순문학의 이념과 장르소설을 가장 훌륭하게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전범이다. 그는 특기를 가졌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미치지 못한다. 혹시 근접하더라도 2인자일 뿐이다. 암호의 고안과 파해, 신비한 직업을 둘러싸고 세워지는 제도와 특수한 삶 자체가 바로 미스테리이며 이로 인해 마이자의 제재는 쉽게 눈길을 끈다. 하지만 마이자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 신비로운 세계 속의 개인의 생존 상태에 더욱 주목한다. 이것이 곧 그의 작품이 초월적인 품격을 갖게 한다. 이 작가에 대해 나는 다른 자리에서도 논할 것이며, 다행히 마이자도 이번 대회에 참가했으므로 그 본인이 논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얻기 힘든 기회를 이용해 난징의 세 작가를 소개하려 한다. 만약 분류를 시도한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의 유형에 속하지 않는다. 첫 작가는 예자오옌이다. 중국 순문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인 그는 한동안 추리소설에 빠진 적이 있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몇몇 작가들은 추리, 미스테리물에 대해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일치된 견해와 실천을 갖고 있지만 예자오옌은 비교적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며 실천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형태를 드러낸다. 예자오옌은 학자집안 출신으로 독서의 범위가 넓고 학식이 풍부한, 전형적인 학자형 작가이다. 그는 수사학, 범죄학, 동서고금의 탐정, 추리소설에 대해 모두 박식하며 그가 범죄를 제재로 택하는 건 그가 이 인류의 행위가 내용에서부터 형식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므로 그것이 인간성의 전형을 관조하는 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서고금의 다양한 유형의 탐정, 추리소설이 그의 문체실험에 가능성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비교적 전통적인, 인과관계가 확실하고 진상이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도 있고, 탐정, 추리물에 반하는 모더니즘 작품도 있다. 예자오옌의 이런 류의 작품 중 대표작은「오래된 화제」,「최후」,「오천 위엔」,「5월의 황혼」,「녹색 함정」,「녹색 강」등이 있다. 상호비교해볼 때, 예술적 성취가 높은 것은 반反 탐정, 추리류의 모더니즘 작품이다. 결국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는 그것들의 구조는 더욱 예자오옌의 심미적 주체와 일치한다. 나는 예자오옌의 작품을 평한 어느 글에서 “예자오옌 창작의 가장 두드러진 역설은 바로 한편으로는 작가가 작품과 세계에 개입하지 않고 객관적 거리를 두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소원함으로 인해 오히려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 정복욕이 격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헛수고로 끝나는 추적의 구조로 흔히 나타나며 이러한 작품들은 대체로 해결을 기다리는 사건과 인물을 갖고 있다. 이때 서술자는 수수께끼를 푸는 인물로서 작품 안에 등장하며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의 서술을 전개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결과에서 명확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진실과 거짓이 하나로 뒤엉키고 이야기의 초입에서 서술자는 자신감이 충분하지만 뒤로 갈수록 자신감을 잃고 목적도 희미해진다. 답은 이미 중요하지 않고 추적의 과정이 목적이 되며 진실과 거짓도 중요하지 않다. 흥미롭기만 하면 모두 귀띔으로 전해진다. 예자오옌은 이렇게 모호함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이러한 결과는 본래 이상하지 않다. 인간의 동기와 효과는 본래 완전히 통일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자오옌이 보기에 세계는 본래 해명되기 어렵다. 추적을 통해 해명될 수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내가 소개할 두 번째 작가는 펑화馮華 여사이다. 그녀는 추리, 미스테리류 소설에 가장 능한 작가이며 진정한 프로작가이다. 그녀는 심사숙고 끝에 이런 글쓰기를 택하고 매우 의식적이지만, 똑같이 탐정, 추리 외에 다른 의미와 야심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아마도 그녀의 정교한 스토리에 심취할 뿐 작품의 깊은 의미와 우울함을 놓치고 있는 듯하다. 다행히 이번 행사에 펑화 여사도 참석했으므로 나는 역시 짐을 덜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작가는 주후이朱輝이다. 그는 장쑤성江蘇省의 젊은 작가들 중 재능 있는 한 사람으로서 스타일이 충실하고 세밀하며 인정과 세태 묘사에 능하다. 그도 예전에 탐정, 추리물을 섭렵했는데 나는 곧 출판될 그의 새로운 장편『하늘이 안다』를 추천하고자 한다. 나는 이 신작 원고의 독자로서 그의 믿음에 감사를 표하며, 또한 평론가로서 여러분에게 그의 이 추리미스테리 소설의 새로운 실험을 추천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정신적 곤경과 도덕적 극복에 관한 장편이다. 평범한 가정이 조용히 무너지는 것에서 시작하여 플롯의 전개를 통해 점차 주인공 치톈, 그의 아내 양팡, 아내의 정부 멍다, 그리고 에이즈 연구자 저우창, 여자스파이 장잉의 심리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인물의 정신적 지향이 차차 가정의 보호에서 감정을 쫓게 되고, 자존심을 지키고 사회를 구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병’을 갖고 있고 나아가 사회도 ‘병’을 갖고 있다. 에이즈약물의 연구, 제조는 상징적인 의미, 즉 인류에 대한 치료와 구제를 뜻한다. 이것이 소설의 내적 의미이며 소설은 범죄를 저지르고 또 막는 탐정추리물의 ‘외관’을 따른다. 경찰 리티엔위는 분석적 추리와 함정을 통해 결국 거짓말탐지기로 치티엔의 심리적 방어선을 무너뜨려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 그러나 주후이의 이 소설은, 인물의 심리를 은폐하고 사회적 배경의 노출이 적은 탐정,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인물의 성격과 내적인 갈등이다. 고리처럼 맞물리는 플롯은 인물의 행동의 연쇄일 뿐이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것은 인간 도덕의 한계이다. 이것은 잘 읽히는 소설로서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해두었다가 이제 하루 아침에 분출한 것이다. 실로 비범한 작품이다.

 

 

by 다오얀 | 2008/05/07 14:41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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